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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개인적이고 극히 대단하지 않은
제주 동문시장 사랑분식 본문
작년 회사 워크샾으로 제주를 방문하였다가 개인적으로 귀경을 하면서 잠시 틈을 내어 동문시장에 있는 사랑분식을 들러보고자 했었다. 간혹 제주에 갈 일이 생길때마다 '이번에는 꼭 들러봐야지.' 했던 곳인데, 작년에는 마침 개인시간이 좀 생겨서 실행에 옮겨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사랑분식에 대한 기억이 워낙 오래 전에 생겼던 것이라 '아직까지 장사를 할까?' 하는 생각에 검색을 했다가 사랑분식이 방송을 탄 이후 30분 이상 줄을 서야하는 맛집으로 등극했다는 글을 보고 비행기 시간 때문에 발길을 돌렸었다.
사랑분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금은 고1인 딸아이가 기저귀를 차고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였다. 제주에서 결혼하는 친구의 결혼식에 와이프와 딸을 데리고 참석하면서 이틀정도 여행까지 겸했던 그 해였다. 장구경을 하기위해 차를 세운 곳이 동문시장이었고, 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니 제일 먼저 보인 간판이 '사랑분식'이어서 거기서 떡볶이를 먹었던 것이 첫 인연이었다.
당시 라면 그릇같은 큰 그릇에 국물 떡볶이같이 많은 국물에 굵은 떡, 어묵 몇 가닥 그리고 삶은 계란이 통째로 들어가 있었던 것이 조금 특이했고, 떡볶이가 그다지 맵지않아 물에 간단히 씻어서 딸아이가 먹을 수 있는 정도였기 때문에 좀 편하게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가게는 허름했으며, 사람들이 많아서 줄을 서거나 하는 그런 집은 전혀 아니었다. 당시, 엄마가 심부름 시키면 엄청 짜증을 내며 투덜대던 퉁퉁한 여고생쯤 되어보이는 딸이 있었는데, 얼마나 짜증을 내고 툴툴 대던지 가게 분위기마저 좀 싸해지는 느낌이었다.
올해에도 제주에서 워크샾을 하게 되었고, 혼자 여행을 하기위해 나는 일행들보다 하루를 더 있다가 올라오기로 했다. 다시 와보고 싶었던 아부오름을 올랐고, 용눈이 오름도 올랐다. 함덕, 김녕, 협재해변을 둘러보았고,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마을의 골목도 찬찬히 살펴보았다. 맛있는 고기집에서 혼술과 혼고기도 즐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마지막 일정을 동문시장과 사랑분식으로 잡고 동문시장으로 향했다.
촌스러웠던 간판이 빨간색으로 변했다. 엄마가 하는 말끝마다 툴툴대던 딸이 장사 앞전선에 나선 것 같았다. 나이만 더 들어보이지 그 때 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손님들에게 말도 하기 귀찮은지,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번호표가지고 기다려라.', '불렀을 때 자리에 없으면 무효다.' 라는 의미의 경고문 같은 안내문구가 가게 앞에 줄줄이 붙어있다. 29번 번호표를 뽑아 주머니에 넣어두고 시장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싱싱한 귤 몇개를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에 골목을 누비면서 시장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귤은 아직 철이 아닌지 그렇게 많은 물량이 나와있지는 않았고, 사랑분식 때문인지 떡볶이 집이 한두군데 더 생긴 것 같았다.
시장을 한바퀴 돌고 사랑분식 앞에 와서 '29번 멀었어요?' 하니, 지금 28번 음식 만들고 있는데, 29번이 어디 갔다오냐고 뭐라고 한다. 얼른 들어가서 빈테이블에 앉으란다. 빈 테이블로 들어가 앉았다. 가게 내부는 그 옛날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테이블 배치와 음식만드는 조리기구의 배치도 큰 틀에서 그대로인 것 같았다. 아무도 주문을 받지 않아서 눈치를 보니, 테이블 하나에 노트가 올려져 있고 거기에 번호 순서대로 메뉴를 적어놓는 것 같았다. 나도 거기다가 주문을 했다. '사랑식 1, 김밥 1'. 혼자와서 하나만 주문하기에 조금 눈치도 보였고, 아예 여기서 저녁을 해결하고자 했던 생각 때문이었다. 여기서 착오가 생긴 게, 나는 사랑식이라는 메뉴가 떡볶이에 어묵과 삶은 계란이 섞인 예전의 그 메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김밥 위에 떡볶이와 국물, 약간의 어묵을 올린 메뉴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찌하여 나는 김밥을 두 줄이나 주문한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혼자 온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랑식에는 김밥이 하나 들어가 있습니다.' 라는 안내 한마디 없는 게 좀 섭섭했다. 주문도 셀프, 물도 셀프, 수저도 셀프. 왠만하면 알바생을 한명 더 쓰던가, 테이블에 수저통은 비치를 해두던가 하면 좋을텐데, 이건 구멍가게가 대형공장의 생산시스템을 도입한 듯한 어울리지 않는 시스템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많이 팔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면서도, 음식을 서빙하거나 손님에게 안내를 하는 말투 등에서 '내가 힘들게 당신들이 주문한 일을 하고있다.' 라는 느낌이 배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바쁘면 그럴 수 있겠지.' 라고 약간 양보하는 대신 '음식이 맛있으면 그러면 됐지.' 하는 기대감으로 타협을 하기로 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
'이걸 먹으러 온 건가...' 하는 비주얼에 약간의 서글픔과 배신감이 올라온다. 그릇의 옆면도 음식을 반쯤 흘린 것처럼 국물이 묻어있고, 가격은 착하다고 하지만, 어묵 두줄기에 떡 다섯가닥, 튀김만두 하나, 그리고 계란하나. 아래에 김밥이 깔려있다고는 하지만, 김밥의 내용물도 이렇게 빈약한 김밥은 솔직히 본 적이 없다. 게다가 김밥은 어떻게 썰었는 지 두께가 제각각이고 심지어 다른 김밥보다 두배정도 두꺼운 김밥도 있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대어보니, '이렇게 달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음식이 음식 맛이 아니라 설탕 맛이다. 달아도 너무너무 달다. 떡볶이의 고유한 맛은 희미하다. 장거리 장시간 여행을 떠나야해서 의무감으로 음식을 모두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는데도 역시나 사무적이고 무표정한 응대...
사랑분식...
한번은 꼭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런데 가족들과 함께가 아니라 혼자 다시 오게 되어서 다행으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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