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히 개인적이고 극히 대단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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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광명시장의 홍두깨 칼국수집

회색싼타 2019. 7. 31. 00:51

광명시장의 홍두깨 칼국수집은 4, 5년 전에는 꽤 다니던 집이다. 회사사람의 소개로 알게되어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점심을 먹으로 간간히 막힌 길을 뚫고서 꾸역꾸역 왔던 곳이다.

당시에 2500원이던 칼국수가 3000원으로 인상이 되었고,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그 이후로 올 기회가 없어서 올 일이 없었다. 마침, 오늘 강원도 원주로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함께 간 일행을 철산역에 내려주고나니 밀려오는 출출함과 6시가 거의 다 된 시계덕분에 이 집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발걸음 빠른 일행들과 함께 다녀서 크게 걱정은 없었는데, 복잡한 전통시장 골목 안에서 과연 그 집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하는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광명 이마트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딱히 근처에 주차할 곳도 없거니와 이마트에서 만원 이상을 구매하면 한시간은 무료로 주차가 가능했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광명 이마트 주차장을 들어가는 길은 긴장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만든다. 워낙 좁은 길이 급하게 꺽여있어 축간과 윤간이 큰 카니발은 벽과 바퀴의 간격을 10센티미터 정도를 계속 유지해야지만 간신히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주차를 무사히 마치고, 1층으로 나와서 예전 기억을 더듬으니 쉽게 칼국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왔던 시간은 점심시간이라 항상 빈자리가 없었는데, 아직은 조금 이른 시간인데다가 연일 최고기온을 갱신하는 무더운 날이다 보니 칼국수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없어서 인지 생각보다 꽤 한산하다. 1층에는 아예 자리가 없어 2층에 간신히 앉곤 했었는데, 오늘은 1층에 여유롭게 혼자 자리를 잡았다.

 

처음으로 메뉴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캔하는 여유도 부려본다. 점심시간엔 칼국수밖에 되지 않아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오늘은 칼제비를 먹어보기로 했다. 선불이라 선불 결제를 하고 잠시 기다린다.

 

상차림은 극히 단순하다. 큰 항아리에는 새콤하게 잘 익은 배추김치가, 작은 항아리에는 다대기가 담겨져있다. 다대기는 흔히 생각하는 다대기라기보다는 오히려 간장에 가깝다. 그리고, 작은 양념통에 담긴 후추가루. 이게 상에 올라와있는 전부이다.

한 10분쯤 기다렸을까, 드디어 칼제비가 내 테이블에 배달되었다.

 

그릇의 크기는 상당히 큼직한데, 거기에 8부능선 위까지 칼제비가 담긴다. 푸짐하다. 함께 가져다주신 조그만 스테인레스 접시에 김치를 조금 담아놓고 기념사진. 숟가락의 크기를 보면 칼국수 그릇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그릇의 위에는 수제비만 보이는데, 젓가락으로 위 아래를 조금 뒤집어보니, 안에는 탱글탱글해보이는 수제 면발이 가득 보인다.

 

우선 국물부터 세숟가락 접수.

3000원짜리의 국물에서 무슨 오묘하고 신박한 맛을 기대하겠는가. 그래, 그냥 적당한 멸치국물 맛에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조미료로 맛을 낸 듯한 익숙한 맛이다. 그런데, 그게 맛이 있다는 게 문제다. 사실 국물의 맛을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상당히 익숙하고 거부감이 없는 맛이 일단 베이스를 깔고간다. 그런데, 그 위에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조금 부드러우면서도 감칠맛과는 다른 끌리는 맛이 섞여있다. 

면의 굵기와 수제비의 두께도 개인적인 편차는 있겠지만, 내 입에는 딱 맞다. 특히 수제비는 수제비에 내 이빨이 박히는 느낌이 들 정도의 빡빡한 두께와 저항감이 있어서 좋다. 예전에 맛보았던 유명하다는 서울북촌의 수제비보다는 훨씬 좋다. 거기의 수제비는 마치 만두피를 벗겨 끓여 놓은 것처럼 흐물흐물하여 씹히는 느낌없이 그냥 부드럽게 넘어가는 종류였는데, 나는 개인적으로는 그게 별로였다. 면 역시 수제비와 같은 느낌의 식감이라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익숙하고 부드러운 맛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후추와 다대기를 추가하여 강력한 느낌으로 변경을 한다. 다대기에는 매우니 조금만 넣으라는 경고문이 적혀있다.

 

다대기 항아리에 티스푼이 함께 있는데, 두번 반을 넣었다가 맛을 한번 보고 한번 반을 더 넣었다. 총 네스푼을 넣은 셈이다. 잘 풀어서 한 입 먹는데, 오래 전에 잊고 있었던 맛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어릴 때 자라던 경상도 바닷가 마을에서 자주 접했던 맛이다. 매운 것은 별로 모르겠는데 향이 참 좋다.

그런데, 먹다보니 정말 맵다. 이마에서부터 땀이 맺히기 시작하여 얼굴로, 등으로 땀이 줄줄 타고 내릴 정도다. 다대기가 참 맛은 있는데, 조금 덜 맵게 하면 좋을 것 같다. 땀을 흘리면서도 멈출 수 없는 단순반복 행위로 결국은 바닥에 있는 국물까지 완전히...

 

또, 이 가게의 걸작(?)이 김치다. 중국산 김치도 고급이 있다는 것을 이 집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오늘은 보지 못했지만) 벽면에 '중국산 김치'라고 자신있게 써붙여 놓았었는데, 김치의 양념과 맛이 칼국수를 먹기에 참으로 적당하게 익었다. 혼자서 김치도 거의 반 통을...

 

나오면서 인증용으로 사진 두 장. 행인들의 얼굴이 안나오게 찍다보니 간판만 두장.

 

이마트에 들려 수입맥주 (일본산 빼고) 세트 사고 마눌님이 요청하신 생수사고 해서 주차비 없이 출차.

 

3000원짜리 칼국수를 파는 집에 맛집이니 뭐니하는 표현을 한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짓인 것 같다. 하지만 왠지 편한 익숙한 맛과 마지막 수저를 내리면서 '잘 먹었다.'라는 생각이 들고, 바쁜 생활 속에서 간간히 생각이 나는 집이 있다면 가격과 품격을 떠나 그 집은 '맛집'이라 불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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