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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17년만에 다시하는 괌여행 - 4일차중 4일차

회색싼타 2019. 6. 9. 17:50

4일차중 마지막 여행 날이 밝았다.

 

오늘은 숙소에서도 체크아웃해야하고 하루종일 렌터카와 붙어 지내야하고 새벽 2시까지 렌터카를 공항에 반납하고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이 큰 그림이다.

 

4일차 일정을 구상을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마지막 남은 하루를 알차게 써야할 것 같고 해야할 게 많은 것 같은데, 막상은 뭘 해야할 지, 어디를 봐야할 지 딱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괌이라는 섬이 그다지 크지 않은 섬이라 뚜렷하게 꼭 방문해야 하는 곳이 많은 것은 아닌데, 섬 전체의 분위기가 아늑하고 더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곳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17년 전 신혼여행때,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간 탈로포포 폭포의 개장시간과 잘 맞지않아 입구에도 되돌아왔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오늘의 전체적인 일정은 첫 날과 좀 겹칠 수도 있지만, 섬 반대편에 있는 탈로포포 폭포와 요코이 동굴을 구경하고 저녁에는 사랑의 절벽에서 석양을 감상하는 것으로 큰 일정을 잡았다.

 

일단 큰 계획을 잡고 떠나다보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추가적인 일정은 생길 수 있는 법. 4일차의 전체적인 일정을 지도에 나타내면 다음과 같았다.

 

1. Fish Eye

2. 탈로포포 폭포와 요코이 동굴

3. Jeff's Pirates Cove

4. 사랑의 절벽 (Two Lovers' Point)

5. 시내 도보 투어 후 공항

 

 

Fish Eye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모든 짐을 다시 정리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필요없는 짐들은 큰 트렁크에 정리했고, 사용해야 할 짐들은 내 백팩으로 나눠 정리를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차에 모든 짐을 실은 후 출발했다. 

 

시내를 벗어나 첫날과 같은 방향인 남쪽으로 내려갔다. 물놀이 이외의 아이들이 즐길만한 액티비티가 없었는데, 호텔 출발 전 호텔바로 옆에 있는 언더워터월드의 씨트렉(특수한 호흡기를 착용한 채, 수족관 바닥을 걸어다니는 체험)을 해 볼 의향이 있는 지 물었더니,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는 건 시도하지 않는 안전위주의 특이성격이라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사실 예약도 하지 않았던 상태라 하고싶어한다고 해서 100%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경험상 현장에서도 무난히 신청과 체험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에 하고싶어 한다면 해 줄 생각이었다. 그냥 수족관 투어는 제주에서도 경험을 했던 터라 굳이 여기까지와서 수족관 투어만을 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첫날 남쪽으로 내려가는 중에 Fish Eye라고 되어있는 안내판을 지나친 적이 있었고, 대충 뭘하는 곳인지는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우선 그 곳을 들려보기로 했다. 역시 예약은 안된 상태.

하걋냐를 지나 조금 속도를 줄이고 지나치지않게 잘 살피며 내려가는 중, Fish Eye라는 팻말이 보이고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바다를 향해 기다란 가교가 보이고 그 끝에는 조그만 건물이 보이고 가교 양 옆으로는 여러 척의 배와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가교 입구에는 매표소가 있었다. 우선 가교를 빠져나오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여기 뭐가 있어요?'라고 물었더니, 계단으로 바다 아래로 내려가 바깥을 구경하는 것이라고 한다. 시스템이 파악이 되었는데, 가교 입구의 매표소는 맨 끝 건물의 계단을 이용해 바다 아래로 내려가는 체험의 매표소이고, 중간중간의 배와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다른 액티비티를 예약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가교만 공용으로 쓰는 것이었다. 매표소에서 예약하지 않았는데 바로 체험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매표소의 가격표를 가리키며 바로 가능하다고 한다. 표를 살때 카드가 아니라 현금으로 하겠다라고 했더니 10명 이상에게 적용되는 단체 요금을 적용해서 조금 싸게 해 준다.

표를 사서 가교를 지나가면서 바라보는 풍경이 이채롭고 아름답다.

 

가교근처에서는 시워커, 스노클링과 같은 여러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스테이션들이 있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어림잡아 가교의 길이가 200미터가 조금 안되는 듯하게 느껴졌는데, fish eye체험과 다르게 가교를 왕복하면서 바라보는 경관자체도 기억에 남는 체험이었다. 다음에 아이들이 좀 더 크고 약간의 용기가 좀 더 생긴다면, 시워커나 스노클링, 다이버 체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교 끝의 건물에 도착하면 70여개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수중으로 내려갈 수 있게 되어있고, 커다란 원형공간이 마련되었어서 창을 통해 바깥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수족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으나, 보여주기 위해 잡아 놓은 생물들이 아니라 진짜 바다 속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수족관에서는 늘상 보이는 상어가 실재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모두 감탄을 하며 시선을 떼지 못했던 것 같다.

 

 

탈로포포 폭포와 요코이동굴

 

탈로포포 폭포를 가기위해 다시 길을 떠났다.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다가 첫째날과 같은 코스로 가는 것보다는 다른 코스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우선 괌 남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17번 도로를 타게되면 시간이 좀 더 절약이 된다는 점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보게 된다는 점이 주는 매력을 뿌리치지 못해서였다. 대신, 첫째날 날이 저무는 바람에 꼭 가보고 싶었지만 지나쳐야만 했던 이나라한의 St. Joseph 성당과 그 마을을 가보지 못한다는 점은 못내 아쉬웠다. 다음에 괌을 오게된다면 꼭 들리겠다는 마음속의 약속을 남긴 채, 5번도로를 경유하여 17번 도로로 접어들었다.

섬을 관통하는 17번 도로는 또다른 매력이 있는 풍경과 길이었다. 딱히 눈에 띄는 것이나 관광지라고 말할 건 없지만, 밋밋하지 않고 다소 변화가 있는 산길을 지나는 것 자체가 매력이 있었다. 산길이라고 해서 빽빽한 나무가 우거지거나 꼬불꼬불하고 경사가 심한 그런 길은 아니다. 키큰 나무들보다는 나지막한 나무와 풀밭이 펼쳐진 그런 길에 가깝다.

17번 도로를 접어들어 얼마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길 오른 쪽에 조그만 마을이 있어서 차를 세우고 마을 골목을 좀 거닐었다. 잘 정돈된 마을은 아니고, 주민의 생활자체가 보이는 그런 마을이었다. 마당 옆에 녹슬어 망가진 차가 세워져 있는 집이 있는가하면, 조그만 나무로 울타리를 잘 정리한 그런 집도 있었다. 간간히 서 있는 키큰 나무 아래에는 천도복숭아의 색과 비슷한 열매가 지천으로 떨어져 있는데, 와이프가 '애플망고'라고 하면서 화들짝 놀란다. 한국에선 제대로 된 맛을 보기도 어려운데, 여긴 길에 마구잡이로 떨어져 있다는 게 아이러니 하다.

 

길에서 주운 애플망고를 와이프는 한국 돌아오는 공항에서까지 간간히 까서 먹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망고라나.

마을을 둘러볼 때에는 주민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 주의해야하며, 주민과 불필요한 접촉은 피하는 게 좋다.

 

산길을 넘어서 내려가다보면 도시에 가까운 큰 마을이 나오는데, 탈로포포 시가지다. 바리가다 (투몬 해안에서 볼 때 공항 너머 반대쪽 행정구역)의 시가지 보다는 작은 곳인데, 바리가다보다는 조용하고 나름대로 느낌이 있는 시가지이다. 투몬은 관광지로 특화되었고, 바리가다는 그냥 대도시 느낌이 난다면, 탈로포포는 전원주택단지나 별장마을같은 느낌이다. 비싸게 보이는 주택들의 비율은 오히려 투몬, 바리가다보다도 더 높은 듯 했다.

탈로포포 해안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다보면 탈로포포 폭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10분 정도 더 달리다 보면 탈로포포와 요코이동굴을 들어갈 수 있는 매표소가 나타난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왠 젊은 현지인 청년하나가 안내를 하면서 기차를 타라고 한다. 처음에는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으나, 키즈까페에 있음직한 크기보다 조금 더 큰 기차가 사람이 걷는 속도보다도 더 느리게 마당을 한바퀴 돌고는 제자리로 왔다. 그게 Love Land라는 곳을 한바퀴 돌면서 구경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다음은 귀신의 집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아이들도 있고, 굳이 여기까지와서 귀신의 집이라니..  하는 생각에 거기는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케이블카를 타고 폭포로 내려가면 된다고 한다. 안내지도에는 회전그네, 범퍼카 이외에 몇가지 놀이기구가 더 있는 것으로 소개가 되어있으나, 실재로는 고장이 난 상태거나 운행이 불가능한 상태로 보였다. 어린이 기차로 돌면서 보니,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의 흉상이 서 있는데, 이름이 이철수이고 'My heart is here forever.' 라고 새겨져있다. 아마 탈로포포 공원의 설립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설립자가 사망한 이후 관리와 뚜렷한 색깔의 부재로 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탈로포포 공원을 둘러본 최종적인 느낌은, 공원도, 놀이동산도, 관광지도 그렇다고 유적지도 아닌 이상한 곳이라는 것과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고 아마 다시 괌을 오더라도 재방문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케이블카는 케이블카라기 보다는 국내 스키장에서 볼 수 있는 곤돌라 형태인데, 4명이 꽉차게 탈 정도로 크기는 작았다. 케이블카를 조작하는 분은 한국인 아저씨였는데, 순간 괌에서 한국으로 순간이동을 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케이블카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다보면 계곡아래 제1폭포가 보인다. 폭포라고 해서 규모가 대단한 폭포는 아니고, 높이가 5미터 정도에 폭은 15미터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흔들다리를 하나 건너면 폭포를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데, 물이 깨끗해 보이지는 않아서 물에 손이나 발을 담궈보고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산속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오염된 물은 아니겠지만, 탁도가 높고 부유물 같은 것들이 많이 떠다니고 있어서 깨끗하다고 생각이 되는 상태는 아니었다. 걸어서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제2 폭포가 있는데, 규모는 제1폭포와 비슷한 것 같았다.

 

 

 

탈로포포 폭포를 보고 요코이 동굴을 보기위해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위로 올라왔다. 한국인 안내 아저씨에게 요코이 동굴을 가는 길을 물으니 아래에서 보고 올라와야 한단다. 안내지도에는 위에서 더 가까이 표시가 되어있어 당연히 위에서 가는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요코이동굴을 보기위해 다시 내려가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 분이 "요코이 동굴 볼 것 없어요. 물도 가득 차있고, 매표소 건물에 모형이 있으니 그거 보는 게 더 나아요." 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흠.. 볼 것이 없으면 왜 돈을 받고 손님을 받는 것인지.

신혼여행때는 매표소에서 발길을 돌렸었는데, 이번에도 결국 절반 밖에 못보고 떠나게 되었다. 탈로포포 공원과는 아무래도 연이 아닌 듯 하다.

 

Jeff's Pirate Cove

 

이제 여행은 마지막 코스인 사랑의 절벽만 남겨둔 상태가 되었다.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탈로포포 공원을 뒤로하고 괌 동부해얀을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첫날 남부를 돌고 숙소로 돌아갈 때와 같은 경로를 타게 되었는데, 첫 날은 계속 4번도로를 타고 하갓냐로 넘어갔다면 오늘은 중간에서 빠져서 10번과 16번 도로를 타고 바리가다를 통해 사랑의 절벽으로 가는 코스로 가게 될 예정이다.

해안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던 중, 모습은 익숙하지 않지만, 이름은 많이 익숙한 식당을 발견했다. 어느 블로그를 가던 괌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들린다던 제프 아저씨네 햄버거였다. 딱히 점심 겸 저녁을 먹을 장소를 정해둔 게 아니라, 일단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햄버거 집이라고 하기엔 매장이 아주 아주 컸다. 매장 자체가 3개 구역으로 나뉘진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 들어가면서는 기념품 가게같은 매장이 있었고, 그 다음 구역은 맥주바 같은 느낌의 구역, 그 다음은 식당처럼 많은 테이블로 꾸며진 구역이 있었고 마지막으로는 야외구역이 있었다. 야외까지 따지면 4개 구역으로 보는 게 맞을 듯하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야외와 연결된 구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우리도 그 쪽에 자리를 잡았다. 바다가 보이는 자리라 눈은 호강을 하지만 대신 오후의 후덥지근한 열풍을 그대로 맞고 있어야해서 사실 식사할 자리로는 적당치가 않았다. 실내의 시원한 자리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차피 실내에는 손님이 없어 입구부터 야외까지 모든 문을 열어놓고 냉방을 가동하고 있지않은 상태라 별 의미는 없는 바램이었다. 

제프 아저씨네를 찾을 일이 있다면, 점심시간 보다는 저녁시간이 더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했던 치즈버거를 주문했고, 나와 와이프는 치킨 샐러드에 밥(Red rice)을 추가로 주문했다. 

 

치킨 샐러드가 생각보다 먹을만 했고, 괌음식치고 심각하게 짠 편은 아니라 먹기 편했던 것 같았다. 치즈버거 역시 익히 들었더대로 양이 상당히 푸짐했고, 조금 맛을 본 느낌은 그렇게 뭔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맛은 아니었다. 괌을 여행한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괜찮은 음식점으로 평을 한 이유가 특별하거나 생소한 맛보다는 한국사람들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곳을 괜찮은 식당으로 평가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프 아저씨의 테이블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80%가 한국사람들이었다. 한 테이블이 일본인 가족이었고, 나머지가 모두 한국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야외 테이블의 외곽부분에는 바다를 향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바 형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주로 커플들의 지정석과 같았다.

 

바다를 바라보고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 더운 게 흠.

항상 그런 지는 모르겠는데, 식사 중에 아이들이 있는 테이블에는 해적 그림이 그려진 빨간색 손수건을 하나씩 무료로 나눠준다. 그리 비싸보이는 물건은 아니지만, 해적이라는 이미지와 더불어 아이들에게는 괌, 그리고 매장을 기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직 이 손수건을 애장품으로 잘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괌의 어느 식당에서는 한 번도 팁을 지출하지는 않았는데, 여기서는 테이블에 팁을 올려놓고 나왔다. 팁 이야기가 나왔으니 잠깐 언급하자면, 괌 여행안내 사이트를 보면 식사비용의 10% 정도를 팁으로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소개해 두었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예전에는 그랬는 지 모르겠지만, 팁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일본 관광객들이 대다수인 현재에는 오히려 괌의 문화가 팁 안주는 동양인 관광객들에게 적응을 한 듯하다. 계산서에도 별도의 서비스 차지가 부과되니, 굳이 팁을 두 번 낼 이유는 없을 듯 하다. 만약, 식사 중에 특별한 대우나 서비스를 추가로 받았다면 그런 경우에는 기분좋게 팁을 지출해도 무방할 듯 하다. 호텔에서는 1인당 1달러 정도의 팁을 내는 것은 일반적인 에티켓인 듯 하다.

 

 

사랑의 절벽 (Two Lover's Point)

 

사랑의 절벽은 17년 전 신혼여행 때, 첫날의 첫 코스였다. 당시는 자유여행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어서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 중에 옵션이 가장 작은 패키지 상품을 골랐었는데, 첫 날만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몇몇 다른 커플들과 함께 다녔고 그 날 저녁 가이드에게 '내일 아침부터 우리는 따로 다닐테니 렌터카 좀 알아봐 달라.' 라고 해서 공항에 다시 데려다 주는 것 빼고는 따로 다녔었다. 

어쩄든 당시는 사랑의 절벽이 거기에 얽힌 이야기와 더불어 신혼여행의 경우에는 필수코스였고 가이드가 요구하는 자세로 사진을 찍고 종을 쳐보는 게 교과서적인 절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 우리는, 괌을 떠나기 전 마지막 석양을 감상하는 장소로 사랑의 절벽을 선택했다. 

 

제프 아저씨네을 떠나 바리가다를 통해 다시 괌을 관통하는 코스로 접어들었다. 바리가다가 괌 현지인들 입장에서는 가장 살기 좋은 곳이고 가장 집값이나 집세가 비싼 곳이라고 한다. 다른 곳에 비해 교통량도 많았고, 괌에서 처음으로 지하차도를 통과해 볼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시간이 좀 많이 남아 있었음에도 바리가다를 좀 구석구석 돌아보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의 절벽으로 가는 길 중간에 갑자기 도로가 꽉 막힌 구간이 나타났다. 신호가 바뀌어도 차들이 영 꼼짝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눈으로 해의 높이를 바라봐도 아직 해가 질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꾸역꾸역 그 길을 고집하면서 찔끔찔끔 나가고 있었는데, 정체의 원인은 기름이 떨어져 길 한가운데 멈춰버린 현지인의 픽업 트럭 때문이었다.

 

그 트럭을 지나자 길은 막힘없이 열렸고, 큰 어려움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16번 도로의 끝에 GPO 만큼은 많이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또하나의 쇼핑스팟인 마이크로네시아 몰이 오른 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최종 목적지인 사랑의 절벽으로 가기 위해서는 1번 도로에서 36번 도로로 들어가야 하는데, 36번 도로가 1번 도로에 비해 워낙 좁은 길이다보니 들어가는 포인트를 놓쳐서 유턴을 한 두번정도 해서 들어가는 실수아닌 실수를 했다. 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을 놓치는 실수를...

 

사랑의 절벽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변하지 않은 모습도 있었지만, 전망대와 커다란 식당은 낯선 모습이었다. 해가 질려면 한시간 정도는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뭔가를 입에 넣어줘야 심심하다는 이야기를 하지않을 것 같아서 주변을 살펴보니, 탐 크루즈를 조금 닮은, 정신없이 말이 많고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는 주스 파는 아저씨가 있어서 주스를 두 잔 주문했다. 정말 정신없이 큰 목소리로 혼자 말하고 왔다갔다하는데 왠지 기억에 남는 아저씨다.

 

 

좀 더 남은 시간은 시원한 기념품가게에서 물건구경을 했는데, 망고커피와 바나나커피라는 특이한 커피를 발견했고, 커피를 좋아하는 동생들을 위해 바나나커피를 두봉지 샀고, 괌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아이들 방에 걸어 줄 괌 지도가 그려진 커다란 수건을 샀다.

전망대는 3달러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고해서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굳이 전망대가 아니라도 투몬 해변과 석양을 보는 데에 그닥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라 들어가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지기 시작했다. 서쪽하늘이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말 수가 줄어든 채 지는 서쪽하늘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전망대의 사람들과 투몬 비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해는 구름과 바다 아래로 가라 앉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 졌다. 가자." 라고 하면서 그 곳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석양은 해가 넘어간 다음부터 타오르는 것이다. 성격급한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서쪽하늘이 말 그대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용한 지 5년이 지난 핸드폰으로 그 모습을 모두 담을 수는 없었는데, 열악한 장비로 촬영한 석양을 다시봐도 소름이 돋을 정도다.

 

촬영한 석양을 보정하지 않고 속도만 10배속으로 편집.

해가 넘어가고 석양의 불꽃도 사그라든 이후에도 그 느낌 때문에 한동안은 서쪽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 여운을 길게 마음 속에 간직한 후 일어섰다.

 

공항가기 전까지.

 

몇시간 남지 않은 시간을 쇼핑과 투몬 시내 산책으로 보내기로 했다. 사랑의 절벽의 주차장에서 차를 뺄려고 하는데, 유기견인지 마실 나온 개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가족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개 한마리가 있어서 가지고 있던 주전부리 몇개를 줘 봤는데, 냄새만 맡아보고 별로 관심이 없었다. 아들 중 하나가 '목마른 것 같아.'라고 해서 주스를 마시던 컵에 물을 부어서 주니 목이 말랐나보다. 연신 물을 마시고는 더 달라는 듯이 바라보길래 컵에 물을 더 부어주고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이젠 익숙한 GPO로 가서 한국 아줌마들은 꼭 들린다는 매장에 가서 애들 옷들과 몇몇가지를 샀다. 9시 폐장할 때까지 와이프에게 마음 껏 쇼핑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권한을 주었다. 어차피 사치품이나 가성비가 낮은 물건을 절대 사지 않는 사람인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전권을 주고 나는 아이들과 매장 안과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결국 와이프가 고르고 고른 것은 애들 옷 몇가지와 막쓰는 가방하나.

 

GPO에서 쇼핑이 끝나고서도 비행기 시간인 새벽3시 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다. 항상 차로 왔다갔다하면서 보던가 호텔에서 내려다 보기만 했던 투몬 거리를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차를 우리가 묵었던 아웃리거 주차장에 주차했다. 따로 요금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부담없이 주차를 했다. 와이프가 투숙시에 받았던 무료음료 쿠폰이 아직 사용하고 있지않고 남아있음을 상기하고는 아쉬워 하는 것 같았다. 아웃리거 리조트 내 몇몇 식당과 바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료음료 쿠폰이었는데, 어차피 다시 돌아온 김에 애들에게 주스 한잔 씩 주고 잠깐 앉아서 휴식을 취한 후 움직이기로 했다. 로비에 있는 밤부 바 (Bamboo Bar)에서 쿠폰을 내고 오렌지 주스 두 잔을 시켰다. 투숙 중이었다면 애들 재워놓고 칵테일이나 와인을 주문할 수도 있었겠지만, 또 애들에게 양보..

 

이 때 들은 라이브 음악이 아직도 간혹 입에서 흥얼거려진다.

잠시 편안한 음악을 들으면서 편한 의자에 앉아서 쉬었다. 이미 체크아웃한 호텔의 바에서 무료음료와 음악을 즐기고 있자니 왠지 덤을 얻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 20분 정도 여유를 부린 후, 투몬의 거리로 나섰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는 보이지 않았던 조그만 식당들과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중국의 쇼핑관광객들도 투몬 시내에는 꽤 보였다. 아웃리거에서 PIC 방향으로 1 Km 정도를 거리를 걸어갔다가 길을 건너 반대편으로 다시 걸어왔다. 괌의 투몬 시내의 밤거리도 밤 10시 30분을 전후해서 모습이 많이 바뀐다. 10시 30분 이전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모습이지만, 그 이후에는 관광객의 이동은 확연히 줄어들고 인근 클럽의 현지인 유동인구가 급증한다. 17년 전만큼 그 모습이 극과 극으로 바뀌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술취한 현지인들과 불필요한 충돌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은 조심해야 할 듯 하다.

 

투몬 시내도 간단하게라도 구경을 했고, 유동인구도 많이 줄어든 상태라 공항으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아웃리거에서 차를 빼서 공항입구 써클 K 주유소에서 주유를 했다. 아무래도 공항입구라 가득 채우는 것에 대하여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였다. 금액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5만원 정도 기름이 들어갔던 것같다. 한국보다는 쌌지만, 괌치고 그렇게 싸게 들어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에어컨 계속 켜 놓은 상태로 섬 남부를 두바퀴 돌았고, 북쪽 끝의 리티디안까지 왕복한 것을 생각하면 납득할만한 금액이었던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하여 와이프와 짐을 먼저 내려놓고 아이들과는 렌터카를 반납하러 갔다. 애초에 렌트를 할 때 알려줬던 깃발 아래로 가니 "Value?" 하고 물어본다. "Yes"라고 대답하니, 간단히 연료상태만 확인하고 무전으로 공항 사무실로 체크한 내용을 알려주고는 "OK" 한다. (Value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무슨 말인가 했으나 내가 계약한 렌터카 업체 이름이었다. ㅡㅡ; ) 생각보다는 아주 쉽게 차량반납체크를 끝냈다. 20초도 채 안걸린 듯.

 

아이들과 공항으로 올라와서 보안검사를 미리하고 면세점 앞 벤치에 앉아 비행기 출발시간을 기다렸다. 한가지 실수를 했던 게, 나의 괌 여행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담없이 선물할 초콜렛을 혹시 야간에 면세점이 문을 닫을까 걱정하여 전 날 K마트에서 미리 사 둔 것이었다. 집에와서 혹시나 해서 하나 뜯어봤더니, 괌의 뜨거운 열기 때문에 초콜렛이 녹아버려서 먹을 수는 있으나 누구에게 주기에는 손부끄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한국에 돌아와서 몇몇 사람들에게 립서비스 또는 술한잔으로 선물을 대신해야 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다. 출발하기 전 뒤늦은 저녁 겸 야식으로 요기를 해야할 것 같아서 몇가지를 주문했는데, 우동은 절대 시키면 안되는 것임을 알았다. 소금물에 밀가루 말아놓은 맛.

 

절대 시키지 말아야 할 우동집.

새벽 2시가 넘어서면서 출국장이 분주해진다. 각자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든 사람들이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줄에 기지가지 눈빛을 하고서 서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우리 가족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잠에 푹 빠져있었다. 갈 때에는 여행에 대한 설레임으로 잠을 자지않는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귀국편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한국 영공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아침이 밝은 상태였다. 창 밖으로 뚜렷한 미세먼지 층이 보였고, 아래 쪽으로는 답답한 회색 빛에 잠긴 도시와 땅이 보였다.

 

이제 다시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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