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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만에 다시하는 괌여행 - 4일차중 1일차 본문

아이들과 함께

17년만에 다시하는 괌여행 - 4일차중 1일차

회색싼타 2019. 5. 16. 23:50

착륙에서 체크인까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괌 공항에 착륙을 하였다. 활주로 접근 중에 창 밖으로 보이는 군데군데 불밝힌 마을에 마음이 설렌다.

그런데, 우리의 입국은 그닥 신통치가 않았다. 비행중에 승무원이 와이프에게 '비자 있으세요?'라고 물었는데, 와이프가 잠결에 '네.' 라고 대답을 한 것이었다. 대답은 짧막했지만, 마치 나비효과처럼 일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착륙후, 입국심사를 받기위해 줄을 섰는데, 새벽이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전부였다. 무비자로 입국하기 위해서는 세관신고서 외에 별도의 서류를 추가로 작성해야 한다는 것을 거의 심사직전에야 알게 되었다. 서둘러 줄을 빠져나와 서류가 비치된 데스크에서 급하게 서류를 작성한 후, 다시 줄을 섰는데, 하필이면 그 사이에 일본에서 비행기 한 대가 더 착륙을 한 것이고, 우리가 서류를 작성하는 그 짧은 시간에 줄은 어마어마하게 길어진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가족들은 줄에 남겨두고 나 혼자 서류를 작성해서 다시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후회를 해도 방법이 없었다. 줄서기와 순서기다리기의 달인들인 일본인들 맨 뒤에서 입국심사를 받았다. 예상보다 족히 한시간은 더 걸렸고,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탔던 한국사람들은 이미 한시간 전에 공항을 다 빠져 나간 듯 했다. 

간신히 입국심사를 마치고 수하물을 찾으러 갔는데, 이게 왠 일인가. 우리가 내린 비행기의 수하물 컨베이어벨트에 우리의 트렁크가 없는 것이다. 이미 컨베이어벨트는 동작을 멈춘 상태였고, 그 위엔 어떤 가방도 없었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모든 짐은 거기에 있는데... 공항관계자에게 수하물이 없다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로밍을 꺼놓지 않았는지 070번호로 전화기까지 울린다. 이시간에 왠 070? 하면서 일단 받았는데, 아이쿠. 항공사 직원이다. 사람들이 모두 다 빠져나갔는데, 주인없는 짐이 있어서 항공사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단다. 처음엔 그 항공사 사무실이 인천에 있다는 것으로 알고 기겁을 했는데, 괌의 사무실이라고 한다. 짐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하여튼, 집사람이 잠결에 무심코 한 '네.' 라는 대답 때문에 입국은 이렇게 요란했다.

 

나는 렌터카 부스를 찾아가서 예약사항을 확인하고, 원인제공자인 와이프가 2층 사무실을 찾아가서 낑낑대며 짐을 찾아왔다. 렌터카를 현금으로 선불계산하겠다고 하니, 유상이었던 와이파이가 무상으로 바뀌고, 전체 요금도 약 10% 이상 즉시할인을 받았다. 괌도 카드보다 현찰이 더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느끼는 상황. (이런 경험은 4일차에도 있었다.) 차 모델도 소형 일본 박스차를 예약했었는데, 예쁜 파란 색의 소나타로 변경이 되었다. 그냥 업그레이드라고 생각하고 있다. 덕분에 넓직한 트렁크에 짐을 편하게 싣고 다녔다.

 

와이프, 두 아들과 함께 짐을 끌고 차를 받으러 왔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차에 이미 나 있는 흠집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해서 서류에 남겼다. (이건 그 직원이 해 준다. 혹시 직원이 놓치는 게 있는지, 손전등 어플을 켜고 열심히 확인해야 한다.) 체크가 끝난 후, 트렁크에 짐을 싣고, 가족들을 태우고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길을 하나도 모르는 것이다. 내비는 없고, 비는 내리고... 창문을 내리고 차를 점검해준 직원에게 'Can you show me the way to Days Inn Hotel?' 했더니, 렌터카 사무실에서 준 간단한 지도를 펴놓고 저기 출구로 나가서 계속 내려가다가 삼거리에서 좌회전 한 후, 첫번쨰 주유소에서 우회전해서 직진하면 왼쪽 편에 있다고 자세히 설명해준다.

 

가르쳐준대로 길을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내리는 비를 뚫고 숙소로 가면서 '비가 계속 오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이 은근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숙소에 도착하고 체크인. 한국에서 출발하기 이틀 전에, 페이스북 메신저로 호텔측에 late check-in에 대하여 미리 알렸기 때문에, 새벽 5시에 가까운 체크인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와이프는 '이럴 줄 알았으면, 호텔 1박 빼고 그냥 차에서 잠시 쉬었다 가도 될 뻔 했네.' 하는데, 제일 늦게까지 달게 잤다.

 

첫날 아침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7시경부터 깼다 자다를 반복하다가 9시쯤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창문의 커튼을 열어젖히니, 선명한 구름과 파란 하늘이 대조적으로 흩뿌려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 비가 그쳤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호텔에서의 뷰는 정말 볼 것 없다. 창고지대 느낌이다.

 

저렴한 호텔치고 침구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에어컨도 빵빵했다. 화장실의 조명이 많이 어둡고 화장실의 설비들이 좀 많이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씻거나 이용하는 데에는 큰 지장은 없었다. 후기를 보면, 간혹 물이 파이프를 흐르는 소리, 물 내려가는 소리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던 것 같은데, 괌은 여느 호텔을 가도 그 부분은 감수를 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았다. 한국의 수전, 배관 기술이 훨씬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었다.

 

호텔의 구조는 가운데가 뻥 뚫린 사각형구조고, 가운데로는 주차장까지 내려다보이는 게 특이했다. 호텔의 느낌 자체는 괜찮았다.

 

호텔 복도 한쪽 끝에 커다란 제빙기가 있어서 유용했다. 칵테일 병을 차갑게 유지하기 위한 용도로 제공되는 얼음이었는데, 빈 비닐봉지에 얼음을 듬뿍담고 렌터카에서 빌린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이틀 간은 아주 요긴하게 얼음을 썼다.

 

본격적인 출격준비.

 

큰 트렁크와 작은 트렁크, 그리고 백팩의 짐들을 모두 꺼내서 재배치를 했다. 일단 호텔에 둘 짐은 큰 트렁크,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이나 신발은 작은 트렁크, 그리고 수시로 사용해야 할 것과 생수는 백팩에 담았다. 그리고, 출발.

 

첫날의 경로를 지도상에 나타내봤다.

계획한 것은 섬 남부를 돌아보겠다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웠다.

 

1. 하갓냐대성당과 스페인마을, 차모로 민속마을

2. 토마스메사 스트리트

3. 성 디오니시오 교회와 그 마을

4. 이나라한 자연풀장

5. 맥 크라우츠 (저녁식사)

6. 밤하는 별구경

7. 숙소복귀

 

첫째날의 여정

GPO (Guam Premium Outlet)과 하걋냐

 

숙소에서 차를 끌고 길로 나왔다. 하걋냐로 가기 위해서는 해안도로를 따라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계속 가야 했었다는 17년전 신혼여행의 기억에 따라 길을 접어든 것이 처음부터 잘못들어 GPO 앞을 지나게 되었다. 본 김에 들렸다 가기로 했다. 

 

GPO의 느낌은 그냥 우리나라의 아웃렛과 크게 다른 느낌은 없었다. 현지인들보다 더 많은 동양인 (한국인과 일본인)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기도 했다. GPO에서의 쇼핑은 따로 일정이 잡혀있으니, 여기서는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반쯤 지하처럼 생긴 food court가 있어서 거기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괌에서의 첫 식사인데다가 어린아이까지 둘이 있으니, 메뉴의 선택과 주문이 쉽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마트의 푸드코트처럼 가운데 커다란 공간에 테이블들이 놓여있고, 가장자리로 각 매장들이 있어 매장에서 주문한 후, 음식을 받아와서 먹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은 KFC 버거콤보를, 나는 PHILLY STEAKS에서 핫도그와 비슷한 뭔가를 주문했고,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하는 와이프는 한국식당에서 비빔밥 메뉴를 선택했다. PHILLY STEAKS의 주인은 한국인이었다. 동양인이 그 앞에서 잠깐 머뭇하기만 해도 '한국인' 과 '일본인' 이라고 쓰인 큰 간판을 번쩍 든다. 본능적으로 하나를 가리키면 그 언어로 능숙하게 주문을 이끌어낸다. 사실은 나도 그렇게 당한 것.

괌의 음식이 짜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음식을 싱겁게 먹는 우리 가족에겐 정말 짰다. 도쿄의 음식보다 조금 더 짠 듯한 느낌.

 

 

매장은 한식, 일식, 중식, 이태리식과 버거집을 위주로하여 한 10여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이용자는 현지인이 절반, 나머지 반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전부. 괌만의 독특한 전통음식 같은 것은 없었고, 분위기도 우리나라의 푸드코트만큼 깔끔하거나 하지는 않았고 조명도 조금 어두운 듯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하고, GPO내 ABC마트에서 아이들이 사용할 스노클링장비와 하루종일 마실 생수를 샀다. 스노클링 장비를 한국에서 사서 바리바리 싸 오는 것 보다, 현지에서 싸게 사서 사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인 것 같다. 약간 터미네이터처럼 생긴 ABC마트의 지배인(?)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의 유쾌한 표정과 말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다시 길을 떠났는데, 길을 잘못들어 괌 메모리얼 병원쪽에서 좀 해맸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구글맵을 켜고 차량용 와이파이 도시락에 연결하고 지도를 움직여 하갓냐 대성당을 찍고 안내를 누르니, 오호라, 이게 된다. 한국에서는 항상 '경로를 찾을 수 없습니다.' 라고만 하더니, 괌에서는 내비기능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내비가 '100미터 전방에서 시청방면으로 좌회전입니다.' 이렇게 안내가 나오는데, 이 구글맵은 말이 좀 짧다. '100미터, 좌회전!' 이게 다다. 그런데, 주저리주저리하는 것보다 간결하고 핵심적인 것만 나오니 이게 더 체질에 맞는 것 같다. 이 이후로 괌에서는 계속 구글맵을 이용하여 더 이상은 길을 해메지않고 잘 다니게 되었다. 차를 렌트할 때, 내비옵션을 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에 올 때에는 핸드폰 거치대를 하나 꼭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차량용 충전기는 충분히 가져왔는데, 거치대까지는 생각을 하지못했다.)

 

 

바다를 오른 쪽에 두고 좀 달려가다보니, 오른 쪽 멀리 눈에 띄는 노란색 벽에 주황색 지붕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보이는데, 눈에 많이 익은 곳이다. 차모로 빌리지! 지금은 차모로 야시장으로 더 알려져 있는 곳이다. 드디어 하걋냐 도착. 차모로 빌리지 야시장은 내일로 예정되어 있으니 오늘은 패스하고 바로 하갓냐 대성당으로 이동하고 주차. 오랫만에 보는 대성당이 마치 고향에라도 온 것 처럼 반갑다. 

하걋냐 대성당은 신혼여행때 상당히 아쉬움이 남았던 곳이다. 당시에는 금성 오토보이라는 조그만 필름카메라 하나를 가지고 왔었는데, 하필이면 여기서 내장 배터리가 아웃되어 더 이상 아무런 사진도 찍지 못했던 곳이다. 그 때문일까. 니콘 D7000으로 완전무장한 나는 여기서만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어댔다. 

성당은 미사시간이 아니라 매우매우 조용하고 고즈넉했으며, 바람이 통하지 않아 매우 더웠다. 예전과 달리 관광객은 1달러를 내 달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비록 날라리이지만 무늬는 천주교 신자인 우리는 거부감없이 1달러씩을 냈다.

 

1달러를 기부

 

성당의 내부. 예전은 제대앞까지 가서 촬영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성당의 중간까지만 들어갈 수 있게 해 두었다.

 

여기까지 들어갈 수 있다.

하걋냐 성당은 미사시간에는 관광객이 들어가서 사진촬영을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운 좋게 미사시간을 피했지만, 일정이 빽빽하게 세운 경우라면, 미사시간을 피해서 들를 수 있도록 미리 조율이 필요할 듯 하다.

 

괌은 바라보는 곳마다 힐링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가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마음의 안정과 평안함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보정하지 않은 평범한 사진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가 있다.

최근 한국의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방학 떄 아이를 데리고 미세먼지를 피해 괌에서 한달 살기를 하고 돌아가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다고 하는데, 극성스럽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와보면 상당히 이해가 되긴 한다.

 

17년전 성당 옆 정원에서 코코넛을 잘라서 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오늘도 그 때의 아저씨와 같이 빨간 색을 입고 코코넛을 잘라서 파는 아저씨가 보인다. 17년전 사먹은 코코넛 주스가 너무 맛이 없었던 기억이 나서, 와이프와 '그 아저씨 아직도 코코넛 팔고 있을까?', '에이 설마...' 하는 대화를 했었는데, 정확히 그 아저씨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같은 모습으로 같은 것을 팔고 있는 아저씨를 보니, 그 때의 그 아저씨라고 믿기로 했다.

 

괌에서 흔하고 볼 수 있는 꽃들이다. 꽃들이 높은 나무에서 핀다. 

프레임 트리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음. 괌에서 흔한 꽃.

 

괌을 대표하는 플루메리아.

플루메리아는 흰색에서 옅은 빨간색까지 다양한 꽃색을 가지고 있는데, 향기가 목련과 비슷한 좋은 향기가 난다.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스페인마을에 들려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멈춘 듯, 17년 전에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제 왔던 곳처럼 느껴진다. 스페인 마을의 높은 대청마루 같은 곳에 동네총각이 드러누워 오디오를 켜 놓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는 것 조차 그 때와 똑같다. 물론 그 때의 그 총각은 아니겠지만. 

하갓냐 대성당과 스페인마을은 투몬의 관광지와는 다르게 이국적인 느낌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첫 일정으로 여기를 넣은 것이기도 하고, 여기에 와서야 정말 한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을 왔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스페인 마을의 역사적 의미를 아이들에게 간단히 설명하고 체험학습보고서용 사진을 몇장 찍고 다음 여정을 위해 출발했다.

 

 

Tomas Mesa Street

 

괌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보면, Tomas Mesa Street가 나온다. 아마 이 곳을 아는 한국인은 우리말고는 없을 듯 하다. 왜냐하면 여기는 관광지나 알려진 곳이 아니고,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다. 신혼여행때 여기서 해프닝이 있었기 때문에 잠시 들렸다. 

신혼여행때 렌트한 차가 여기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었다. 지나가는 차는 없고, 당시는 핸드폰도 없었고, 민가도 딱히 없어서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본넷을 열어놓고 애꿎은 엔진룸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트럭을 타고가던 덩치가 산만한 원주민이 'May I help you?' 하는데 지레 겁을 먹고 손을 가로 젓기도 했었다. 전화기를 빌려주면서 쓰고 싶으면 쓰라고하는데도 얼른 자리를 떠나주기만을 바랬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수한 도움의 손길이었던 것 같은데, 필요이상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 같다. 굳이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을 등떠밀어 보내 버리고 나니, 다시 막막함이 밀려왔다. 근처에 있는 민가를 찾아 기웃거려보니,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의 원주민 소년이 보였고, 차가 고장나서 그러는데, 전화를 쓸 수 있냐고 물었다. 그 소년의 엄마도 인기척에 나오고 우리는 간신히 렌터카 사무실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차를 주지 않았다고 한참을 볼멘소리를 내었더니, 다른 차를 가지고 올테니 위치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준 게 '공동묘지 옆 Tomas Mesa Street' 였다. 그랬더니, 렌터카 직원이 왜 쓸데없이 그렇게 멀리까지 갔냐고 투덜댄다. 당시만 해도 렌터카를 가지고 섬을 일주하는 것은 일반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통화가 끝나고, 아이에게 감사의 표시로 몇달러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돈을 줄려고 했더니, 소년의 엄마가 한사코 사양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나라의 사양하는 문화와 신기할 정도로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어쨌든 소년의 손에 돈을 쥐어주었고, 소년은 수줍게 'Thank you.' 라고 답을 했었다.

 

공동묘지의 비석은 그 때보다 훨씬 그 수가 늘어난 것 같고, 그 소년이 살던 집의 나무는 훨씬 더 울창하게 자랐다. 그 소년은 이제 청년을 지나 장년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실로 시간의 흐름이란 게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다.

 

성 디오니시오 교회

 

괌 남부를 돌다보면 나오는 몇몇 성당 중 하나이다. 육지로 움푹 들어온 만을 바라보고 있고, 길 건너 바닷가에 큰 십자가가 바다를 향해 보고 있어, 종교적인 색채가 많이 나는 그림이 그려지는 곳이다. 

사람의 감성이나 느낌이란 게 참 쉽게 변하지는 않는 것 같다. 괌 남부를 돌면서 멈춰진 곳들이 공교롭게도 17년 전에 멈춰섰던 곳에서 대부분 멈추게 되었다. 예전에도 이 성당의 내부를 보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굳건히 문이 잠겨있어서 내부를 보지는 못했다. 하걋냐 대성당에 비해서는 직선적이고 소박하고 조그만 편이다. 성당 주변에서 바라보는 마을과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평화스럽고 고요한 느낌을 준다.

 

 

차로 좀 더 이동을 하다가 오른 쪽으로 몇몇 사진찍는 사람들이 보여 차를 세웠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형과 바다의 모습이 해적을 소재로 한 영화에 나올 법 한 것 같다. 

최근에 괌에 산불이 났는 지, 산마다 불에 탄 흔적이 많이 보였다. 여기서 내려다 보는 풍광에도 불에 탄 흔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나라한 자연풀장

 

이나라한 자연풀장 역시 딱히 목표로 하고 간 곳은 아니었다.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어서 차를 멈추었고, 그 곳이 17년 전에도 같은 이유로 멈췄던 곳이란 것을 깨달았고, 그 곳이 '이나라한 자연풀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곳이라고 알게 되었다. 여행 전, 준비과정에서 이나라한 자연풀장이라는 단어를 종종 보긴 했지만, 여기가 거기라는 것은 그 곳의 주차장에 주차하고서야 알게된 것이다.

예전엔 역시 조용한 시골(?)이고 이름없는 독특한 해안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명소처럼 되어버린 것이 조금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왜 맛있는 것은 혼자만 숨겨놓고 먹을 때 더 맛있는 것 같은 그런 어린아이같은 마음이랄까.

이나라한 자연풀장은 지형적인 특색으로 인하여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3개의 구역 정도로 나뉘어진 곳에 고여있는 형태다. 해변에서 해안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 구역은 잔잔하게 고여있고 무릎에서 가슴깊이 정도의 깊이로 보이고 (중간까지 들어가보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음), 가운데 구역은 잔잔하게 흐르는 구역인데 상대적으로 깊은 곳으로 보였다. 오른쪽 구역은 가운데 구역의 물이 인공적인 다리 아래를 통해 물이 빠져나가는 구역으로 가장 얕아서 어린아이들이 무리없이 놀기 좋은 구역이다. 

우리는 여기에 처음으로 아이들을 풀어 놓았다. 맨 오른쪽 구역에서 조심조심 물 속을 들여다보더니, 맨 왼쪽 구역으로 가서 본격적인 수영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ABC마트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스노클링 장비가 제 값을 하게 되었다.

 

맨 왼쪽 구역에서의 스노클링.

 

가장 얕은 오른쪽 구역. 앞에 보이는 것은 가운데 구역.

 

아이들이 이나라한에서 물놀이를 즐기다보니 어느 덧 여행 첫 날의 해가 서쪽으로 좀 많이 기울었다. 길 건너있는 상점에서 생수 2통을 사서 애들의 소금기만 씻어주었다.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의 가게에도 한국의 사발면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에 묘한 이질감과 동질감을 같이 느끼기도했다.

 

한국의 사발면까지 구경할 수 있는 이나라한의 동네 수퍼.

 

해저문 이나라한.

 

맥크라우츠

 

어두워진 길을 따라 괌의 동부해안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오른 쪽에 식당이 하나 보이는데, Mc Kraut's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여행준비 과정에서 들어본 식당이름이었다는 게 기억이 났고, 저녁식사도 어디선가 해결을 해야 할 상황이라 주저없이 차를 세우고 들어갔다.

내부에는 현지인들로 보이는 사람들로 다섯 테이블 정도가 차 있었고, 동양인은 우리 밖에 없었다. 조금 멀리 왔다는 느낌이 새삼 들었다.

메뉴 이름은 생각이 안나는데, 아이들은 치킨과 밥으로 구성된 것을 주문했는데, 태어나서 제일 맛있는 치킨이라고 했다. 워낙 고기 종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라, 조금 뜯어서 먹어 보았는데, 맛있기는 했지만, 태어나서 제일 맛있다고 표현할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와이프는 grilled pork가 메인인 메뉴와 나는 역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chop steak 비슷한 메뉴를 주문했다. 내가 주문한 메뉴는 역시나 좀 짜다는 느낌이 많이 났는데, 나머지 음식들, 특히 보라색의 소스와 감자로 만든 것은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인 맛이었다. 와이프가 주문한 메뉴의 고기를 한 입 얻어 먹었는데, 눈이 번쩍 뜨인다. 돼지고기를 구운 것 치고는 단단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우리나라 제주 흑돼지보다도 한 두 수 위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맛있는 치킨이라고 평했던 메뉴
Grilled pork. 환상적인 고기의 식감과 맛!

 

소스가 좀 많이 짰지만, 위에 보이는 보라색 소스같은 것과 으깬감자의 맛이 매력적이었다.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사람들이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에게도 뭐라고 인사나 간단한 대화를 하면서 나가는 것으로 봐서 모두 한동네 사는 동네사람들 같았다.

 

집사람은 맥주도 한잔 주문했는데, 아주 조금의 캬라멜향과 달달한 향이 가미된 부드러운 맛의 맥주였다. 운전 때문에 반모금도 안되는 양으로 맛만 본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맥 크라우츠는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아마 다시 찾게 되지 않으까싶다.

 

 

 

 

 

 

 

 

 

 

 

 

 

 

 

 

 

 

 

 

 

 

 

 

밤하는 별보기

 

역시 이것도 예정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고등학생인 첫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이 우주가 얼마나 큰 것이고 밤하늘에 별들이 얼마나 많은 지를 꼭 보여주고자 했었다. 광해(光害)가 없는 강원도 산속으로 여행을 가서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를 보여주고자 했었는데, 그 때마다 날이 좋지않아 한 번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다.

맥 크라우츠에서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길에 뒤에 앉아있던 녀석 중의 하나가 '아빠 별이 많아.'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왼쪽은 산이고, 오른 쪽은 바다인데, 지나가는 차들도 거의 없고, 가로등도 없는 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차 안에서 유리창 너머로 별이 많이 보인다니... 설마 하는 마음에 길에 차를 세우고 차 밖에 나와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쏟아지는 은하수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그 어느 밤하늘에서도 쉽게 보지 못할만큼의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적도에 가까이 와서 그렇겠지만, 북두칠성이 좀더 북쪽으로 기울어져있었고, 북극성도 거의 산자락 아래에 걸려있었다. 당연히 카시오페이아는 보이지 않았다. 밤하늘을 보며, 아이들에게 책에서만 보던 별자리를 찾아보게 하면서, 어렸을 때, 처음 별자리를 찾았을 때 머리가 쭈뼛 설 정도의 경외감과 공포에 가까운 감격을 느꼈던 것을 회상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 중의 하나가 바로 아이들과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다.

 

숙소

 

다시 숙소로 돌아온 건 밤11시가 되어서였다.

 

이렇게 여행의 첫날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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